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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속의 작은 한국
    양반의 고장

    양반의 고장
    안동 하회마을

    하회마을과 함께하는
    기분좋은 여행

    하회정보화마을은 광덕리, 기산리, 신성리, 하회리로 이루어진 마을로
    구비구비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넓은 평원처럼 아늑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이미지

    - 광덕리

    광덕리는 본래 풍산현 지역으로 넓은 둔덕이 있다고 해서 '광덕'이라 불렸다. 고종 32년(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고,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안섬동, 형호, 하회동 일부를 병합해서 광덕리가 됐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다시 풍천면으로 편입됐다. 이 마을에는 부용대(英賽臺), 겸암정(讓魔훔), 옥연정(玉淵亨) 등이 있다.

    광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은 저우리. 땅모양이 저울의 추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형호(衝湖), 칭율촌(秤票村)이라고 부른다. 저우리 동쪽 마을은 소라니, 솔안, 화천이라 부른다. 저우리의 서쪽 어귀에 느티나무 세그루와 잡목이 있는데, 마을에서는 해마다 이를 대상으로 음력 정월보름 제사를 지낸다. 저우리 서쪽 들은 수박재다. 저우리의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은 안심이라고 불린다.
    안심의 서쪽 마을은 섬목이고, 북서쪽 마을은 솔미, 송미, 송산이다. 저우리 남쪽 마을은 수루미란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서편 마을은 강비이고 앞들은 강빗들로 일컬어 졌다. 수박재는 저우리의 서쪽에 있는 들이다. 수박재 남쪽에 큰 뚝이 있어서 그 안쪽의 들을 큰 천방들이라고 부른다. 또 큰천방들의 서쪽에 위치한 들은 장탄이라고 일컫는다. 장탄의 남쪽 들은 갯들이라 부른다.

    광덕리 마을이미지 광덕리 마을이미지

    - 기산리

    기산리는 기산마을은 풍천면 서편에 위치하는 마을로서 남쪽으로 의성군의 신평면과 맞닿아 있고, 북쪽으로는 낙동강의 남쪽 갯들인 강남평야와 마주하고 있다. 동쪽은 광덕리와 접하고 서쪽은 같은면의 신성리와 예천군 지보면과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 구담 잠수교를 건너면 구담 장터에 닿는다.

    '기산'이란 이름은 산 모양이 키(箕)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기산지지(箕山之志)는 요 임금 때 허유(許由), 소부(巢父)가 명리를 피(避)하여 기산에서 숨어 살았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절개를 지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청에 의하여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성리와 안심동의 일부가 합쳐져서 기산리에 편입됐다. 이 마을은 옛날에는 잠종(醫種)의 생산지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나 요즘은 하우스 단지로 변모했다.

    마을 뒷산 모양이 키와 닮았는데 키 아랫쪽이 되는 곳에 논을 일구면서 마을이 가난해져 그 논을 다시 밭으로 바꾸었다는 속설(倚說)이 있다. 기산마을은 치빗솔로도 불리며 앞들은 치맛들, 기산명이다. 치맛들 북서쪽 마을은 섬마이다. 옛날 낙동강 제방이 없었던 시절에 물줄기가 양쪽으로 흘러 섬마 도촌(島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섬마 앞에 구담나루, 구담도선장이 위치했다. 기산리에서 구담장터로 건너가는 나룻터였다. 지금은 잠수교와 구담대교가 놓여있다.

    기산리 마을이미지 기산리 마을이미지

    - 신성리

    가장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신성마을의 북쪽은 낙동강이 동서로 갈라진다. 구담리 예천군 지보면과 마주하고 있는 동쪽은 기산리와 접해 있다. 서쪽은 예천군의 지보면과 의성군의 신명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으로는 야산에 구불구불한 곡천(曲川)이 마을을 관통해서 남북으로 흘러내려 낙동강과 합류한다.

    본래 풍산현 지역으로 마을의 짜임새가 납신자 모양이라 하여 납성계, 신성포라고 불리웠는데, 고종 32년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안동군 풍산면에 편입됐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기산리의 일부와 용궁군 신하면의 하안한리(下安閒里)를 합쳐 신성리라고 불렀다. 다시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지금의 풍천면에 편입됐다.

    마을의 앞쪽이 되는 낙동강 남쪽은 강남평야의 서쪽 끝으로 갯들이라서 불리기도 했다.

    마을의 가운데 지점이 중마, 서쪽 마을은 새터, 신기(新基)라고 불렸고 그 서쪽에 탑이 있다고 해서 탑마, 탑촌(搭村), 탑지(搭址)라고 하는데 지번은 신성리 972 번지이고 지금은 옛절터의 주춧돌만 남아었다.

    신성리 마을이미지 신성리 마을이미지

    - 하회리

    하회마을의 지형을 태극형 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낙동강 줄기가 이 마을을 싸고돌면서 S자형을 이룬 형국을 말한다. 강 건너 남쪽에는 영양군 일월산(日月山)의 지맥인 남산(南山)이 있고, 마을 뒤편에는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花山)이 마을 중심부까지 완만하게 뻗어 충효당(忠孝堂)의 뒤뜰에서 멈춘다. 강 북쪽으로는 부용대(芙蓉臺)가 병풍과 같이 둘러앉아, 산천 지형 또한 태극형 연화부수형국을 이룬다. 유성룡(柳成龍) 등 많은 고관들을 배출한 양반고을로, 임진왜란의 피해도 없어 전래된 유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허씨(許氏) 터전에, 안씨(安氏) 문전에, 유씨(柳氏) 배판이라는 말대로 최초의 마을은 허씨들이 일궜다.

    하회탈 제작자도 허도령이었다고 한다. 화천(花川)의 흐름에 따라 남북 방향의 큰 길이 나 있는데, 이를 경계로 해서 위쪽을 북촌, 아래쪽을 남촌이라고 부른다.

    북촌의 양진당(養眞堂)과 북촌댁(北村宅), 남촌의 충효당과 남촌댁(南村宅)은 역사와 규모에서 서로 쌍벽을 이루는 전형적 양반가옥이다. 하회마을 특히 허씨 안씨 류씨가 시대별로 집성촌을 이루면서 시기별로 민속신앙 불교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고, 기독교 문화까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역사와 전통의 고장이다.

    하회리 마을이미지